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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작성일 2025-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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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연

농사를 지으며 든 생각을 글과 노래로 만든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기타를 가르치고, 가끔 공연 하러 방방곡곡 다닌다.

과일가게에서

최영미

 

사과는 복숭아를 모르고

복숭아는 포도를 모르고

포도는 시어 토라진 밀감을 모르고

 

이렇게 너희는 서로 다른 곳에서 왔지만

어느 가을날 오후,

부부처럼 만만하게 등을 댄 채

밀고 당기며

붉으락푸르락

한 세상이 아름다워지려는구나

 

 요즘 과일가게에 가면, 세계 온갖 나라에서 온 과일이 많아요. 말레이시아, 페루, 미국, 호주······. 그 먼 나라에서 어떻게 동네 과일가게까지 왔는지 신기해요. 과일을 먹으면서, 이 녀석이 우리 집 밥상에 오를 때까지 어떤 여행을 했을지 상상해 봐요. 조그만 씨앗에서, 나무가 되고, 열매가 되어 커다란 배를 여러 대 갈아타고, 여러 사람에게 안기고 또 안겨 여기까지 왔겠지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내가 과일가게에서 오천 원을 내고 포도 한 송이 사는 것은, 정말 작고 작은 일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해요. 나는 돈을 내고 포도를 샀을 뿐이지, 이 포도 한 송이가 여기에 오기까지 수많은 일들을 다 알 수 없으니까요. 그 속에는 비가 오지 않아 걱정하는 농부 마음도 있을 것이고, 새벽같이 일어나 물류센터로 향하는 택배 기사님의 땀도 있을 거예요. 저로서는 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한 송이 가득 들어 있어요.

어린 시절에 저는 혼자서 모든 걸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누구 앞에서 눈치 볼 일도 없고, 서로 다른 생각에 열 올릴 일도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거예요. 돌이켜보면, 내가 혼자 해낸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은 모두 수많은 사람과 함께 해낸 일이에요.

세상은 혼자서 모든 일을 해내야 한다고 말하잖아요. 그게 내 가치고 쓸모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기도 해요. 그런데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그 가운데 내가 혼자 만든 것이 얼마나 있는지요. 정말 사소한 것 하나도 혼자 만든 것이 없어요. 지금 내가 잠깐 가지고 있을 뿐이지요.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자꾸 경쟁하고 싸워서 이기려고 해요. 그러나 우리는 사과와 복숭아처럼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존재에요.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죠.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물건을 들어보세요. 그 물건이 내 손에 오기까지 어떤 사람을 만났을지 떠올려보세요. 그 얼굴과 손과 마음을 생각해보세요.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지 않나요?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게요. 우리 주변을 조금 더 세심하게 들여다본다면, 조금씩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이 사람들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이렇게 한 세상이 아름다워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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