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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작성일 202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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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수연

농사를 지으며 든 생각을 글과 노래로 만든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기타를 가르치고, 가끔 공연 하러 방방곡곡 다닌다.

목적지가 가까워 올수록

 

박노해

 

티베트인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높은 곳에서

 

인간이 취하는 가장 낮은 자세로 오체투지 순례를 한다.

 

희박한 공기의 고원길을 오체투지로 걸어 사원에 도착한 여인이

목적지가 가까워 올수록 속도를 줄여가며 숨을 고른다.

 

이 길고 험한 순례길이 무엇을 위해 왔는지를 되새기면서,

 

다만 그곳에 가기 위해 가는 어리석음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지금 여기, 한 걸음 한 걸음이 이미 목적지임을 되새기면서. 

 농부가 되고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왜 농부가 되었냐라는 질문이었어요.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니고, 몸이 편한 것도 아닌데, 왜 농부가 되었냐는 거죠.

농사는 이 없는 일이에요. 작물을 심고, 거두면 한 해 농사가 끝난 것 같지만, 거둔 땅을 어떻게 관리해 주냐에 따라 다음 해 농사가 달라져요. 그러니 농사는 끝없이 한해 한해 이어지고 있는 거죠.

저는 농사에 끝이 없다는 사실이 좋았어요. 끝이 없으니, 정답도 없고, 잘하고 못하고도 없지요. 때때로 농사가 잘되는 해가 있고, 잘 안되는 해가 있을 뿐이에요. 살아가다 보면, 아주 괜찮은 하루가 있고 마음이 무겁고, 쓸쓸하고, 화가 나는 하루도 있잖아요. 날마다 그런 것도 아닌데 누가 나보고 너는 왜 자꾸 화를 내?”라고 물어보면 그것만큼 억울한 게 없을 거예요. 저는 평소에는 꽤 괜찮은 사람인데 말이죠.

농사를 짓다 보면, 나쁜 농사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태풍이 와서 비바람이 몰아치고, 때로는 몇 주 동안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기도 하거든요. 그 더위와 추위를 버티고 꿋꿋하게 자라준 농작물들을 보면, 고맙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올해가 얼마나 고단했는지 아니까요. 왜 이것밖에 못 컸냐고 나무랄 수가 없어요. 그러니 작물이 잘 크지 않았던 해도 지나고 보면 좋은 농사를 지었다는 생각을 해요.

무더운 여름날에, 작물들이 자꾸 병이 들어서 마음이 속상한 날에 저는 이 시를 떠올려요. 제가 농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왜 지금까지 농사를 짓고 있는지를요.

올해도 알맞은 만큼 농사를 짓고 싶어요. 너무 잘 짓지도, 못 짓지도 말고. 올해 제가 해야 할 만큼의 일을 하고 싶어요. 그것이 끝없는 농사일에서 제가 세운 목적지에요. 바람 부는 날에, 비 오는 날에 작물들과 함께 고생하면서 이 땅과 내가 이어져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요.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살다 보면 삶이라는 농사도 꽤 풍년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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