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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작성일 2015-08-18

역리(栢亦里)는 본래 삼가현 백산면(三嘉懸 栢山面)의 지역으로 잣나무가 많아 자시 또는 백역(栢亦)이라 해서 합천군 백산면(陜川郡 栢山面)에 편입되었다. 백역(栢亦)마을과 하허(何許)마을 2개의 행정리에 자시, 백역, 먹골 등 3개의 자연마을로 되어 있고 백역마을은 자시, 백역 2개 마을로 나누어져있다. 백역마을은 면 소재지 국도에서 약 7.5km 거리에 있다. 지대가 높지 않으나 면 소재지에서 외딴 마을이라 전쟁 때나 난리 때 피난지로 찾아드는 이가 많았다고 전한다. 농지가 부족하고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나 산지에서 수입을 내는 농사를 지을 수 없어 대대로 가난했고 이젠 그마저도 젊은이가 귀해 낡은 빈집이 많은 백역마을이다. 814(), 김종환 이장을 자택에서 만났다. 아래는 그와 나눈 얘기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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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도순 서로 아끼며 사는

마을이 되길 바란다

 

 

 

 

 

 

 

김종환, “어려서부터 농부가 꿈이었다. 지역 어르신들의 손맛을 잘 이어가고 싶다.” ©임임분

 

 

자기소개를 해달라

1963년 백역마을에서 났다. 내가 날 때는 보릿고개라는 말이 현실이었다. 합천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녔고, 중학교부터 서울에서 학교 다니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때는, 20대 초반이다. 농사 짓는 일이 어릴 때부터 꿈이었다. 농사 짓는 일이 꿈이었지만,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니 현금이 궁해서 지역 선배의 권유로 환경공단 기능직(장비관리직)으로 일하면서 농사 짓는 생활을 20년 넘게 했다. 딸 넷 아들 하나를 뒀고, 마을에 어머니도 살아계신다. 젊어 농사를 시작해 농민후계자, 4H활동, 어머니가 하던 누에농사를 양잠특작으로 15년 가까이 했다. 양잠은 특수사료를 만들어 누에를 키우거나 다른 농장에 사료를 공급하는 선도농 활동까지 했는데, 한국의 실크산업이 무너지면서 양잠도 그만두게 됐다. 지금은 희귀식물, 야생화를 식용 또는 약용으로 활용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쌀농사, 이모작으로 양파·마늘농사도 짓는다

 

희귀식물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취미로 하던 약초공부가 대량으로 하게 된 때는 10여년 정도 되었고, 지금은 <무궁화정원>이라는 이름으로, 희귀야생화 재배와 식용약용상품, 약초재배, 보급사업을 하고 있다

 

무궁화정원인가?

무궁화가 진딧물이 꽃을 괴롭히는데도 꿋꿋하게 꽃을 피우고 하는 모습이 좋았다. ‘무궁화라는 단어가 조금 보수적이고 국가주의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도 있지만, 무궁화를 직접 키우기도 할 정도로, 나는 무궁화를 좋아한다.

 

식물채취를 직접 하기도 하는가?

직접 하기도 하고 전문산채꾼에게 구입한다

 

희귀야생화사업은 어떤 단계인가?

군이 마련하고 도립거창대 평생교육원이 주관하는 미래농업대학의 약초과정 수강생으로 공부는 꾸준히 하고 있고, 우리 농장에 찾아오는 방문객에게 견학도 시키고 판매도 하고, 온라인으로 주문판매도 방송으로 알려지면서 방문객이 더 많아졌다. 나 또한 암투병 환자였고, 완치된 일도 알려지니 입소문 듣고 찾아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장 경력은 얼마나 되는가?

올해로 2년차다. 환경공단 다니기 전에도 이장 일, 해봤다. 우리 마을 이장 임기는 따로 없다

 

백역마을 주민 현황은?

47가구에 57명이 산다. 가장 나이 어린 주민 나이가 40대 후반이고 가장 나이 많은 어르신으로 90대 초반이 있다

 

주민 연령대가 높은데, 주민들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는가?

젊어 모아놓은 돈, 나라에서 나오는 지원금으로 사신다. 농지가 부족한 동네다. 자녀가 있어도 부모를 돌보지 않아 홀로 사는 어른이 꽤 된다.

 

백역마을 현안은?

경지가 적어도 주민들이 농사 짓는 농지가 있는데, 자녀들이 잠깐 잠깐 와서 농사를 거들어주려고 해도 길이 나빠 늘 어려움을 겪는다. 농로, 마을길 정비를 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 다른 세대가 마을에 들어와 살 수 있게 된다. 마을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소득사업을 하고 싶어도 주민들 연령대가 높아 어렵다. 마을 저수지 낚시터가 마을수익사업으로 활용되길 바라는데, 이 저수지도 우리 마을만의 관할지가 아니라 다른 마을과의 협의도 필요하고 관할기관인 농어촌공사와의 협의도 남아있다.

 

이장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나 어려운 일이 있다면?

우리 마을에는, 우리 지역민을 일제의 강제징용에서 빼내준 면장에 대한 고마움을 지역민이 힘으로 공덕비를 만들어준 전통이 있다. 아픈 부모에게 제 살을 떼어 내준 효자가 나온 마을이기도 하다. 특히 현재 마을 주민으로 살아계신, 80대 후반의 정 모 어르신은, 스물일곱살에 홀몸이 되어 시부모 뿐 아니라 시조부모까지 살뜰히 모시고 열심히 살아온 삶으로 지역민들 칭송이 자자해 기회가 있으면 늘 알리고 싶은 일이다.

올 봄부터 마을회관에서 하는 한글교실은, 어르신들의 호응이 아주 좋다. 처음엔 여러 마을 묶어 다른 마을에 열겠다는 교실을 내가 적극 요구해서 우리 마을에 연 한글교실이다. 처음 34명이 한다고 신청했는데 요즘도 20명의 어르신이 꾸준히 출석한다. 글 배우는 어른에게 글 아는 어른이 장난치시는 모습을 봤는데, 참 재미있고 흐뭇하더라. 막 자기 이름 쓰게 된 어른이, “아무개야, 니 이름 써봐라하니, 공책에 구멍이 나도록 또박또박 쓰시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글 도는, 아주 보람 있는 일이구나, 싶었다. 한글교실한다고 해도 머뭇대고 함께 하지 않는 어르신도 있다. 그런 어르신에게, 글 안배워도 되니까, 그냥 같이 모여 노는 좋은 일이라고, 꾸준히 설득하고 모아낸다

 

여가에는 무엇을 하는가?

요즘은 잘 못하지만, 가끔 산행을 한다. 일부러 안가도 예전부터 직장 일로 외지로 출장 가거나 할 때, 산이 가까이 있으면 산에 가고 하는 식이었다. 지역민들과 야생화동호회 활동도 했고 지역행사에 희귀야생화 전시 활동도 하고. 최근에도 영상테마파크에서 전시를 했다. 혼자 뭔가 만드는 일도 좋아해서 목공예를 혼자 공부해 지금 집에 있는 가구들은 내가 만들었다

 

지역언론에 대한 평소 생각은?

뉴스는 티비나 종이신문보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보는 편이다. 거창한 주제나 사건보다 지역언론에 나오는, 작아도 생생한 지역소식을 좋아한다. 예전에 고향소식을 나 나름으로 소식지처럼 정리해 향우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해봤다. 그 덕에 지금도 친구들은 고향 소식을 나한테 자주 묻는다. 지역언론이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점은 좋다. 예전과는 다르겠지만, 너무 눈치 보지 말고, 잘하는 일은 잘한다고 얘기하고, 못하는 일은 못한다, 제대로 하라고 지적하는 언론이 되길 바란다. 비판만 있는 언론도 지역발전을 해친다. 칭찬도 함께 가야 한다고 본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역민과 지역에 당부하고 싶은 얘기나 바라는 일이 있다면?

귀농·귀촌인이 마을에 들어오려고 해도 마을의 기반인 도로가 좋지 않아 당장은 어렵다. 그럼에도, 귀농·귀촌한 이들 가운데, 지역 어르신들의 손맛을 살린 된장·간장사업으로 수익을 내는 일을 보면, 지역주민들이 평생 만들어온 유형자산이 한 개인이나 집단 이익으로 빠져나가는 듯 해서 안타까웠다. 우리 어르신들이 아직 힘이 있고 그 자산을 스스로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방식, 고민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주체가 되는 방식으로. 산청에 약초 관련 사업을 뺏긴 일이 안타깝다. 조 식 선생, 문익점 선생도 합천이 다른 지역에 뺏겼다고 본다. 시기·질투보다 누구든 잘하는 일은 잘한다고 진심으로 축하해주면 좋겠다. 마을 어르신들 모인 자리에서도 누누이 얘기한다. 우리 오순도순 서로 아끼며 살자고. 최근 경북 상주의 농약사이다사건을 봐도, 마을에서 오순도순 사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내 가장 큰 바람이다.

- 임임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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