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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5-17

성리1구마을의 죽전(竹田)은 대밭골이라 불리고 옛날 삼기현(三崎縣) 당시 시죽촌(矢竹村)이라 불렀으며, 화살을 만드는 대나무가 많았다고 죽전동(竹田洞)이라고도 하며 안동 권씨(安東權氏) 집성촌(集成村)이다. 송지터는 옥산정(玉山亭)의 팔송(八松)이 유명했으며 좋은 소나무가 있었다고 송지동(松旨洞)이라고도 한다. 428() 오후, 성리1구마을회관에서 권재진 이장을 만났다. 아래는 그와 나눈 얘기다.-임임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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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를 해달라.

1947년에 성리1구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외지에 나간 일 없이, 농사를 짓고 있고. 아내는 봉산 계산리 출신. 주 작물은 쌀, 곶감용 감이고 밤농사도 좀 짓는다. 성리1구엔 아내와 둘이 살고 자식들은 다 외지에 산다. 아내가 힘들어해서 올해는 농사도 좀 줄였다.

 

이장 경력은 얼마나 되는가?

2년차다. 그동안 농사만 열심히 짓다가 마을 위해서 일을 해보겠다고, 내가 나서서 이장 일을 맡게 됐다.

 

이장 일 외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가?

30년 전에 새마을지도자 했고, 지금은 따로 하는 사회단체활동은 없다.

 

성리1구마을 주민 현황은?

67가구에 120명이 살고 있다. 최연소자 주민은 유치원생, 최고령 주민은 94세 어르신이다. 생계활동을 하는 주민은 30%쯤 된다. 주민 주력층은 50.

 

성리1구마을 현안은?

20년 전 경지정리를 하면서 농로에 놓은 다리 두 개가 요즘 농사 짓는 현실에 맞지 않게 좁아서, 넓혀달라고 제안을 했는데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다. 3년 전 꽃길가꾸기사업으로 1억 정도 받아 마을기업 형태의 영농법인을 만들어 젊은 주민들이 시설재배(6)를 하고 있다.

 

마을에 귀농·귀촌 사례가 있는가?

귀농으로 두 가구 들어왔다. 귀촌까지 합치면 네 가구 되고. 우리 마을 출신 이주민은 비교적 잘 지내는데, 우리 마을이 원래 권씨 집성촌이라, 다른 성씨가 들어오면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데, 다 나름 서로 잘 지내려고 한다. 크게 다툼 없이 지내는 편이다.

 

이장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 어려운 일, 주민과 지역사회에 부탁하거나 당부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이장하기 전과 달리, 이장을 맡고 나니 예사로 보던 일도 유심히 보게 되고, 잔소리도 하게 되더라. 주로 하는 잔소리는 아무데나 버려진 쓰레기처리문제다. 다음은 도로에 나와 보기 흉하고 위험한 농기계, 안전한 곳으로 치우자는 얘기를 하게 된다. 마을 일을 논의할 때 서로 주장이 다르고 완강해서 간혹 합의까지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힘들 때가 있다. 그런 점은 조금, 서로 양보하고, 좋게 좋게 해결하는 노력을 조금 해주면 참 좋겠다. 의논할 때 좀 힘들어서 그렇지, (57일 마을 잔치)마을행사를 하게 되면 서로 역할분담해서 잘 치루는 장점은 있다.

 

성인문해교실이나 여러 취미교실, 우리 마을 주민들은 크게 관심이 없다. 보건소에서 찾아와서 검진해주는 프로그램 정도에나 관심 있고.

 

임기에 꼭 하고 싶은 일은?

마을안길 정비, 하수구 정비 등 자잘하게 해야 할 마을 일이 있는데, 내 임기에 하나라도 더 해놓고 싶다. 요즘은 핸드폰으로 마을방송을 할 수 있어서, 면사무소나 농협을 거의 매일 드나들면서 마을 관련 정보가 있으면 바로바로 방송하고, 마을을 위해 이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신나게 하고 있다.

 

지난 20대 국회의원선거, 평을 한다면?

늘 여당에 힘이 실리는 구도가 도리어 나라 발전에 도움이 안되었다고 봐서, 이번 선거 결과는 잘되었다고 본다. 게다가 우리 욕심엔, 우리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 없기도 하고, 이왕이면 우리 일가가 좋은 결과를 받았으면 했는데, 바람대도 되지 않아 아쉽기도 하다. 강석진 당선자, 지역 편애하지 않고, 합천을 위해서도 열심히 일해주기 바란다.

 

최근 아들 권우현 향우가 로스쿨 졸업하고 변호사가 됐다. 아들이 어떤 법조인이 되길 바라는가?

대학시절부터 로스쿨까지, 지 나름으로 10년 넘게 고생해서 드디어 변호사가 됐다. 부모인 우리도, 농사 지어 뒷바라지하느라, 남모르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변호사 시험 합격을 해줘서, 참 기특하고 고맙다. 아들한테 니가 결국 해냈구나. 잘했다. 고맙다.”라고 해줬다. 앞으로 아들이, 초심을 잊지 말고, 어려운 사람 돕고 베풀어가며, 좋은 일을 많이 하라고 했다. 특히, 배울 만큼 배우고 높은 자리 있는 사람이 나쁜 짓을 크게 해서 벌을 받고 뉴스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 참 한심하고 안타까웠다, 그런 일은 절대 하지 않는 법조인이 되기 바란다고 얘기해줬다.

 

여가에는 무엇을 하는가?

이제까지는 농사 지어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여유가 전혀 없었다. 남은 그렇게 일해서 버는 돈 다 어디 쓰냐고 하지만, 내 나름으로 힘들었다. 이제 막내아들도 변호사가 됐고, 큰 일은 끝내서, 아내도 힘들어 하니 농사도 줄이고, 등산이나 여행도 하고, 여가생활을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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