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8-05-29
박옥순
일주일 째 오락가락하던 비가 개자 새벽이 한층 여문 것 같다. 처서가 지났음을 바람이 일깨워준다. 일렁일 때마다 몸에 들러붙는 칙칙하고 물기 머금은 바람이 아니라, 새벽 냉기를 살짝 머금고 내 몸을 안아올 때 상쾌하기까지 하다. 내 몸 안의 지치고 답답하고 불쾌하게 만든 모든 세포들이 말끔히 씻겨지는 것 같다.
날이 밝기 전부터 울어대던 매미 소리가 끊어진 지 며칠이 지난 것 같다. 이따금씩 귀뚜라미가 또르륵 귀뚤거린다. 항상 새벽을 알리던 앵무새와 잉꼬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서늘해진 새벽공기를 이기지 못함인가. 계절은 바람이 바꾼다고 시에서 읽었던 기억이 문득 난다.
키 큰 갈대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서걱서걱 가을 이야기를 한다. 아직 갈꽃은 달지 못했지만 조만간 향기는 없지만 꽃을 피울 것이라고. 꽃을 좋아하는 남편과 나는 오일장이 설 때 가끔씩은, 길가에 전을 펴고 꽃을 파는 꽃가게 옆을 기웃거리기를 좋아한다. 이 꽃, 저 꽃 모양새도 보고, 이름을 물어보고 가격도 알아보고, 마음에 드는 꽃이 있으면 사기도 하면서 꽃가게의 단골임을 즐거워한다. 지난해 초봄, 남편이 화사한 연분홍 장미가 심어진 커다란 화분을 안고 왔다. 꽃송이가 내 주먹만 하고 향기가 너무 좋아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너무 아름답고 향기로워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낀다. 봄부터 가을까지 장미는 피고 지고를 계속하더니 꽃송이가 점점 작아졌지만, 꽃값을 충분히 해주었다고 만족해한다. 시샘이라도 하듯 나도 화분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평소에 좋아하던 수국이 내 품안으로 왔으며 찔레장미 그리고 조화처럼 화려한 꽃 두 송이를 피어 올린 카라까지.
가을이 깊어지면서 꽃들은 화단에 옮겨 심어졌고 카라는 너무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자태로 인해 땅에 내어주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조금 큰 화분에 분갈이를 해주었다. 관심을 가지고 안 가지고의 차이였을까, 화단에 옮겨진 꽃은 찔레장미 외에는 올여름 가뭄과 땡볕에 잃고 말았으나, 카라는 화분에서 왕성한 번식력으로 숲을 이루더니 네 송이의 검붉은 꽃을 피워 올렸고 여름 내내 콧대 세워 그 꽃으로 즐거움을 주더니, 가을바람이 소슬한 지금은 꽃송이 속에 씨를 양껏 품고 무게를 이기지 못해 고개 숙임의 미덕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보통은 꽃이 지고 씨방으로 꽃씨를 잉태한 것으로 알았으나, 카라는 조금 다른 것이 꽃이 핀 그대로 그 꽃 속에 씨를 품고 있는 것이 새삼 신비롭기까지 하다.
가게의 미닫이를 밀고 안으로 들어서니 매운 듯, 비린 듯 밤새 가두어 둔 공기에 업혀 역하면서도 알싸한 향이 미닫이 밖으로 줄달음쳐 나온다. 예뻐서 꽂아 둔 부추꽃의 향이다.며칠 전, 이웃에게서 팔을 다쳐 베지 못한 웃자란 부추를 베어 가라는 전화가 왔다. 꽃대가 많이 올라왔지만 부드럽다면서, 그냥 두면 버릴 것 같아 아깝다는 말을 덧붙여 남의 농작물에 칼을 쓰는 부담을 줄여 주는 말도 잊지 않는다. 그 밭에 가보니, 하얗게 핀 부추꽃으로 인해서 너무나 아름다운 꽃밭이 되어 있었다. 부추꽃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평소에 관심조차 주지 않아서 이런 경이로운 모습으로 나에게 왔나, 서로 자랑하듯이 피어 있는 꽃송이가 너무 예뻐, 한 소쿠리 베어다가 부추는 다듬어 김치도 담고 전도 부치고 꽃은 항아리에 풍성하게 꽂아 두었다.꽃을 항아리에 꽂으면 실내가 밝아지고 나 자신이 항상 꽃같이 예쁘고 귀하다는 만족감에 취한다. 향기로운 미소라고 이름을 붙여 꽃을 가까이하니 향기로운 미소가 며칠을 상냥하고 친절한 나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꽃 항아리에는 봄부터 여러 종류의 꽃이 꽂힌다. 양념 그릇으로 쓰던 항아리를 비워서 꽃을 꽂으니 꽃 항아리다. 버들강아지,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찔레꽃이 차례로 꽂아지고 철쭉, 장미 등 주로 집 주위에서 가지를 뚝 분질러 꽂아두는 것을 좋아한다. 꽃은 좋지만 안타까운 경험도 가끔 하면서 애잔한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들꽃을 집에 들이는 내 이기심의 후회와 반성이 따르면서 시행착오의 혹독한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한다.지금 길가의 개망초 꽃 사이에서 색은 바랬지만 노란 꽃송이를 드물게 달고 있는 달맞이꽃을 마주한다. 초복 무렵의 달맞이꽃은 색이 너무 선연한 노랑색이라 꺾고 싶은 마음으로 며칠을 두고 고민을 하다가 어느 날은 작정하고 전지가위를 챙겨 새벽 운동을 나섰다. 강변 모래밭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달맞이꽃을 한아름 잘라다가 손질을 하여 항아리에 꽂아 두었는데 어쩐지 저녁 무렵에는 시들면서 꽃잎을 떨구어 내는 게 아닌가. 꽃봉오리가 오롱조롱 달려있어서 행여 하는 마음에서 시든 꽃잎을 다 따내고 물을 갈아 주었더니 이튿날 새벽에는 새로운 꽃이 활짝 피어 꽃 단지를 바라보는 나를 감격하게 해 준다. 그러나 그 감격도 잠시, 네 이파리의 노란 꽃송이가 무리 지어 피어 있지만 어쩐지 외로워 보인다. 새벽에 온 힘을 다해 꽃송이를 피워올렸지만, 너무 슬퍼 보여 가슴을 시리게 만들더니, 그 꽃잎마저도 정오가 되자 시들기 시작하여 저녁 무렵에는 꽃대에서 축 늘어져 지저분한 모양새다. 내일 새벽을 기대하면서 꽃 정리를 하고 항아리에 물을 갈아 주었더니, 다음날 새벽, 꽃송이는 달렸으나 너무나 왜소해지면서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 있는 꽃을 마주한다.65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후회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상처로 남는 순간이다. 예쁘다고 꺾어다가 항아리에 숨도 못 쉬게 비좁게 꽂아 꽃을 즐기려 했으니, 어찌 그 꽃이 다시 필수 있으며 향기인들 제대로 낼 수 있으리. 찬바람이 부는 지금까지도 길가에서, 강가 모래밭에서는 피고 지는 꽃을 세 번 밖에는 피워 내지 못했으니 온전히 자연으로 두지 않고 욕심으로 내 안에만 있게 만들려던 내 잘못이다. 꽃을 피우기에는 실패를 하였지만 얻은 것은 있다. 지천으로 피어 있는 저 꽃은 어제의 달맞이꽃이 아니라는 것, 밤마다 새롭게 피고, 날마다 시들어 단 하루의 생명으로 다른 꽃송이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씨방의 자리로 물러앉아 다시 꽃으로 태어나려는 숙명을 되풀이한다는 것. 봄부터 가을까지 꽃을 달고 있긴 하지만 이름처럼 항상 기다림의 끝에, 꽃이었다가 스러져버리는 슬픈 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작년, 어느 골짜기 암자에서 캐온 야생 팬지 1본, 나비 같은 꽃잎이 너무 예뻐 스티로폼 박스에 심어서 물도 주고 영양분도 보충하고 하였지만 잃고 말았다. 꽃잎이 작은 노랑나비를 생각나게 하던 꽃을 실수로 죽이고 말았는데, 올봄, 돌계단 귀퉁이에서 보석같이 싹을 틔우더니, 나비가 나는 듯한 모양새로 한동안 많은 사람들의 귀염을 받던 꽃도 지금은 흔적이 없다. 어느 바람에 실려, 어느 곳으로 날아가 뿌리를 내릴지 내년이 기다려진다.지금 화단에는 온통 접시꽃 꽃대 천지다. 가끔 꽃을 달고는 있지만 스스로 계절에 순응하여 다음을 기약하는 순리를 보는 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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