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7-10-17
정영희
나는 시골에서 나서 성년까지 고향에서 살았다. 농촌에 살면서도 모르는 풀꽃이 많다. 식물 이름은 교과서에 나오는 이름과 어른들이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그러므로 요즘 인터넷이나 식물도감에서 찾는다.
오늘 아침 컴퓨터를 열었는데, 검색을 하다 ‘손끝에 핀 꽃’ 이라는 제목에 마우스 화살이 꽂혔다. 스토리펀딩이다. 식물을 관찰해서 그림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이다. 이야기인즉슨, 한 포기의 식물을 보고 봄,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변화와 생육을 관찰해서 화선지에 일대기를 담는단다.
박주가리. 이름이 생소하고 어떤 식물인지 궁금해서 살피게 되었다, 어쩌면 수필을 쓰는 작업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사진과 이야기를 보니 내가 늘 상 잡초로 본 식물인데 이름이 참 시골스럽고 예쁘다.
지난달이었다. 장마가 끝났나 싶더니 우리 집 담장을 온통 넝쿨 식물로 꽉 차게 만들었다. 그 모양을 본 사람들은 풀을 잡지 않는다고 많이들 갑갑했으리라. 넝쿨은 나무를 점령한 채 싱싱함을 뽐내며 꽃대까지 달고 있다. 별모양의 보라색 꽃이 너무 예뻐서 한참을 보고 섰다. 이름도 모르는 넝쿨은 겨울이 오자 바짝 마른 가지에 붙어서 조롱조롱 앙징스런 열매를 맺었다. 그 이름은 박주가리, 오늘에서야 이름을 알게 되었다.
박주가리 잎은 심장형 하트 모양이다. 하수오 잎과 비슷하다. 행여 귀한 산야초인 하수오가 아닌가 하고 그냥 두었었다.
잡초로서 꽃을 본 건 박주가리가 처음인 것 같다. 꽃 이름을 모르면 무조건 야생화다. 박주가리를 자세히 접하게 되어 너무 기쁘다. 항상 시골길을 가다가 새파란 풀이 이슬을 머금고 있으면 그 싱그러움에 작은 파동을 느끼고, 그 풀 속에서 예쁜 색을 띤 꽃을 만나게 되면 그 오묘한 아름다움과 자연의 섭리와 조화에 감동한다. 시인들은 이런 마음의 그 모두를 생명을 불어 넣어 빛나게 하던데, 어리석은 난, 나의 아둔함을 탓 할 수밖에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떤 사진작가는 식물에서 새싹이 나고, 자라고, 꽃 피우며 씨를 만들고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다시 돋아남을 사진으로 찍어 기록해 놓고, 그림 작업을 한단다. 그러나 나는, 시골에 살면서 모든 풀꽃들을 예사로 보았고 어쩌다 꽃으로 피어난 모습이 예쁘긴 했으나 그것도 잠시, 모든 풀꽃들은 나를 괴롭히는 잡초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 박주가리라는 이름의 컬아트를 알게 되었다. 호주나라의 동호인들과 교류하면서 이 모두를 예술로 탄생시키는 걸 직접 본 것이다.
나는 수필을 공부하고 있다. 감히 수필 강좌를 들으리라는 꿈도 꿔보지 못했는데, 내 곁에 찾아온 수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내 머리 속은 너무나 복잡하다. 수업에서 배운 수필을 쓰기 위한 50계명을 챙겨보면서 유명작가의 수필을 읽어본다.
진실하게 쓰고, 체험을 간결하게 쓰며, 살면서 경험한 것을 써보라고 한다. 독서가 바탕을 이루고 생활 속에서 겪었던 일을 써내면 된다. 하지만 나는 쉽지 않다. 잘 정돈되었든 정원이 얼크러진 꽃밭으로 변화된 그 속의 꽃들과 대화를 해본다.
지금의 내 머릿속과 같다. 벌써 수필 강좌는 후반으로 넘어가고, 숙제를 잘 해야 제대로 배우겠다. 마음은 레지던스 사업기간 동안 수필 한편을 써야하는데, 지금 내 욕심과 실천의 과정에서 괴리감이 생긴다. 욕심이 앞선 탓일까. 마음이 힘들다. 내 머리 속은 온 통, 글을 써야 교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을 것이 아닌가싶어 마음속에 그리던 이야기를 써보리라 하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첫 시간에 강의하시는 교수님이 “워드 하실 줄 아시죠!” 하는데 머리가 하얘졌다. “수필은 워드로 하시는 것 아시죠?” 하신다. 워드 작업을 제대로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하지, 사는 동안 쓰는 것을 안했더니 갑자기 이름 쓰는 것도 어설펐던 경험이 있어 어느 날부터 쓰는 연습을 했다. 나는 컴퓨터를 합천 복지관에서 배웠었다. 몸에 익히기까지 많은 세월을 보냈지만 쓸 일을 만들지 않아 아직도 노트 필기가 익숙하다. 이제 제대로 컴퓨터 쓸 기회가 온 것이다. 며느리에게 선물받은 노트북이 이제야 제대로 빛을 보게 될 것 같다. 강의를 듣게 되면 기본적으로 글을 한편 써내야 된다. 이 강좌가 끝나기 전에 수필이 무엇이가를 제대로 익혀야 하는데 마음이 조급해진다. 강의가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노트북을 열었다.
그냥 생각 속에서 맴돌던 이야기를 썼다. 연필로 종이에 쓸 때보다 지우고, 읽어보고, 다시 쓰고, 여러 번을 반복하니 참으로 쉬운 것을 첫 숙제에 당황한 나머지 마음만 힘들었다. 한달음에 머리에 남는 사건 하나를 썼다. 이야기가 짧을 것 같아 계속 더 써나갔다. 우리 집 장마가 지나간 잡초 속 정원 같은 글이 된 것이다.
내 앞에 온 수필 강좌를 열심히 배워서 잡초 속에서도 이름을 찾은 박주가리가 되리라.
내 마음 속에 시시콜콜 이야기들이 나오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름을 알고 본 박주가리는 호박넝쿨과도 엉켜있고 넝쿨 속에는 여지없이 박주가리가 있다.
나도 박주가리처럼 수필이 있는 곳에는 항상 내가 있는 수필 정원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념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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