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7-10-31
전합천교육지원청교육장 임 장 섭
공직생활을 하다 보면 인사이동을 하게 된다. 인사는 대개 자기의 의사가 반영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나는 퇴직을 한지도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렸지만 유독마음에 남는 건 내 의사와는 전혀 다른 인사라 그러하리라. 그러니까 2004년의 일이다. 2004년 3월 1일자로 창원에 있는 경남교육과학연구원에 교육연구관으로 발령을 받았다.
환경이 바뀌면 어쩐지 긴장되기도 하고 날씨조차 싸늘하기도 해서 마음은 추위를 많이 타게 된다. 우선 거처할 방을 구하고 마음을 다 잡아 먹었다. 그날부터 객지에서의 밥해먹기,사먹기,얻어먹기 그리고 빨래하기의 유배생활이 시작되었다.
차분한 심정으로 부임인사를 하고 근무를 하였다. 연구원의 건물은 지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하게 느껴졌지만 마음은 어딘가 뒤숭숭한 날들이었다. 사무실 뒤에는 나즈막한 작은 산이 있었는데 주로 참나무와 아카시아나무가 추위에 떨어 죽은 듯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부임을 하고 둘째 주이던가. 교육연구원에서 바라보이는 건너편 봉림산에 눈길이 자꾸 가 한 번 오르기로 하였다. 나름대로 등산 차림새를 하고 오르는데 사격장 뒤편에 작은 연못이 눈에 들어왔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만든 연못이란 생각에 시당국에 고맙게 여겨졌다. 산길 가까이에는 아카시아 나무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지난해의 억새풀이 바람에 나부끼어 아름답고 등산하기에 좋은 코스였다.
도심지에 이런 산이 있다는 건 시민의 축복이리라. 산중턱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제법 가파르고 힘이 들었다. 마침내 정상에 올라서 더위를 식히고 심호흡을 하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창원이 훤히 내려다보였고 바위며 나이든 소나무들이 바람을 이겨 내기 위해 굽어져 있는 모습들이 퍽 인상적이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머리도 좀 숙이고 겸손 하라는 의미도 있는듯하였다. 차가운 날씨에도 땀이 그칠 줄 모르게 나는 걸 보면 운동에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매일같이 산을 오르게 되었다.
산중턱 아래에 샘터가 있는데 아침에 산길을 오를 때면 빠지지 않고 샘물을 마신다. 목이 마를 때 그것도 전날 한 잔을 했을 때의 샘물 맛이란 무엇에 비유할 수 있겠는가. 어떤 때에는 바가지에 물을 떠 놓은 고마운 분들도 있다. 불가에서 말했던가. “흐르는 물도 떠 주면 공덕이다”고. 물을 한 잔하고 운동기구들이 있는 곳에서 역기를 들고나면 세상을 든 양 힘이 솟구친다. 역기는 인기 있는 기구라 일찍 가든지 아니면 아예 늦게 가면 그래도 몇 번을 들 수 있다.
산중턱에는 비를 피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어떤 이는 거기서 매일같이 득음을 하기 위함인지 야호를 외치는가 하면 어떤 이는 발길질과 윗몸일으키기를 수도 없이 하는 걸 보게 된다. 간혹 인심 좋은 분들께서 댁에서 커피를 가져와서 먹기를 권하는데 산에서 마시는 커피의 향을 무엇에 비유하겠는가. 커피를 얻어먹는 나보다도 주는 그들의 표정이 밝고 여유롭게 보여 더욱 산을 닮아가는 듯하다.
한 번은 산의 아름다움에 도취하여 밤에 등산을 하였다. 주기(酒氣)가 있는 상태에서 산에 올라 사방을 내려다봤을 때의 광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례한 나를 산이 보듬어 준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산을 오르면서 사람들의 정겨운 대화와 모습들도 좋으려니와 산새들의 지저귐에서 신기한 것을 발견하였다. 아니 지저귐이라기보다는 대 합창을 하였다. 유심히 관찰해 보면 새들은 상당히 질서가 있어보였다. 리더격인 새가 소리를 내면 저마다의 위치에서 나름대로의 소리를 내는 듯하였다. 그들은 암수에 따라 자기들의 음성의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소리를 내는 게 아닌가. 정가의 한 장르인 시조창에서의 율려와 고저가 있는 듯했다. 그것도 한꺼번에 모두의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니었다. 어디서 한 소리가 들리더니 다른 위치에서 소리가 나고 이내 여기저기에서 저마다의 소리를 냈을 때는 봉림산 전체가 대 합창무대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 같은 장소에서 공연을 하는 게 아니고 날마다 장소를 옮겨 다녔다. 운이 좋은 날은 연속해서 공연을 감상하는 날도 가끔은 있었지만 산을 오르는 위치와 다른 먼 곳에 그들이 출장을 가노라면 아쉽고 궁금하기도 하였다. 그들 사회에서도 행사 전 협의회와 사후평가회도 있을듯하기도 하고 단원들에게 리더가 칭찬과 격려도 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 좋은 새가 기획을 해서 결재를 받아 공연의 날짜와 장소를 산신을 비롯한 나무와 동물들에게도 안내하여 자연에게 무한 봉사를 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합창을 듣고 있노라면 나는 어느덧 신선이 된 듯하였다. 새들의 세계나 인간의 세상 모두가 대자연의 품안에서는 조화롭고 순응하는 존재임을 느끼게 하는 순간들이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봉림산에서 어떤 사람들이 등산하며 웃음꽃을 피우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공직유배지의 그 시절 살았던 애환서린 골방과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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