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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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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강석 (합천초등졸, 새마을문고합천군회장, 합천농협이사)

 

하도 멀어 머릿골이라는 지명은 수필가 백남오교수님의 작품 소재이자 고향이다. 행정구역상 경남 의령군 부림면 권혜리로 지금도 마을버스가 다니지 않는 첩첩산중 오지이다. 한때 머릿골은 행정구역으로 합천군 적중면에 속하였는데 경제활동 등 모든일을 보기에 의령군이 편리하여 의령군 부림면으로 편입된 곳이다.

 

어릴적부터 권혜.묵방이라는 마을 이름은 많이 들은 기억도 나고 하여 언젠가는 한 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든 곳이다. 그런 산골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항상 산 너머에는 누가살고 무엇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수탈의 공포에 질린 36년간 일제강점기를 겨우 벗어나자 6.25남북전쟁이 휘몰아 처 국토는 황폐화되고 굶주린 삶속에 이웃간과 갈등마저 깊어져 불신이 팽배한 1950년대. 그시절은 설상가상으로 흉년도 자주 들어 해마다 지도에도 없는 보릿고개라는 고개를 넘어야 했고, 산업시설이 없어 일자리가 모자라 대부분 국민들은 농업에 종사를 하던 때이다. 온 식구가 농사를 짓는다 하여도 먹을 양식이 모자라 겨울이면 칡과 산짐승을 잡아야하였고, 봄이면 나물을 캐고 여름이면 소나무 속껍질 벗겨 배고픔을 채워야 하였다.

 

그시절 대부분의 농촌 사람들은 너무나도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 자녀를 학교로 보내 가르치는 일 보다 농사일을 거들기를 원하였다. 이러한 때에 머릿골이라는 첩첩산중에 살면서 많은 식구들이 한 끼 밥 조차 먹기 힘들었을 것인데 백교수의 부모님은 자녀를 객지로 유학보낼 결심을 하고 그것을 실행한 것을 보니 참으로 대단한 집념을 가진 어른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담한 사람이 먼저 길을 낸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백교수의 부모님은 자식의 배움을 위하여 척박한 산골 땅을 일구면서 노동으로 아무리 많은 땀을 흘려도 힘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년 시절 부모님의 고생을 지켜본 백교수님께서 얼마나 마음 아파하셨는지 너무나 가난이 지겹고 척박한 산골생활을 추억조차 외면하고 싶었다는 심정을 작품속에 숨김없이 고백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백교수와 동대인 나 역시 그 시절 혹독했던 가난한 삶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시린 추억이 가물거린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고향을 떠나고 등 굽은 노인들만 농토를 가꾸고 있다는 것이 오늘의 우리 농촌 현실이 되었다

 

타향도 정들면 고향이라 하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곳이 고향이다. 옛 말에 까마귀도 세상을 하직할 때는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머리를 행한다는 말처럼 나고자란 고향의 향기는 언제나 구수하게 느껴지고 그리움의 대상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여도 평생 고향에서 농사를 천직으로 고집한 부모님의 강한 집념을 본 받은 교수님께서도 한 번 먹은 마음 흔들림 없이 이루어내는 굳은 의지가 있어 그 웅장하고 평활한 지리산의 험악한 능선과 계곡을 수없이 오르내리는 고통을 감수하며 풀잎 하나라도 세심히 살펴 세월에 묻혀가는 사연들을 3권의 책에 담아 세상 밖으로 들어내니 많은 사람들의 관심거리로 떠오르는 결실을 맺엇다고 생각한다

 

특히 겨울밤 세석이라는 작품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등재되어 자기가 쓴 작품을 자기가 가르쳤다고 하니 참으로 뿌듯한 자부심을 가졌을 것이며 그러한 모든 씨앗은 머릿골 토양에서 발아되었을 것이다.

 

어느 농촌과 다를 바 없었던 하동 평사리도 허구인 소설 박경리의 토지 작품 하나로 세상에 알려져 사람들의 발길이 요란하듯이 첩첩산중 머릿골에도 언젠가는 작품을 읽어 본 사람들 관심사가 되어 많은 발걸음 소리 들려오리라는 바램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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