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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작성일 201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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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애

합천꿈꾸는 지역아동센터 생활복지사

한국방송통신대학 교육학과졸

경상대학교 교육대학원 중국어교육학과 재

 

웬 영문인지 퇴근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신랑이 집에 오지 않는다. 은근 조바심을 내고 있는데 마침 신랑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느 때와 달리 신랑은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손바닥을 쑥 내민다. 신랑의 크고 거친 손바닥위에는 정교하게 포장된 작은 선물이 올려져있었다. 그 선물은 지나치게 앙증맞고 아름다워 신랑의 투박하고 큰 손과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았다.

 

신랑과 처음 만나던 그날도 그랬다. 남자가 여자에게 선물을 주는 날이라며 예쁜 유리병에 담긴 왕알사탕을 큰 손으로 조심스레 끄집어내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날 저녁, 달빛 아래에서 신랑은 바람이 차다며 크고 투박한 손으로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손을 꼭 잡았다. 유달리 납작한 남편의 손톱에 눈이 갔다. 남편은 내 손이 작고 예쁘다며, 자기의 큰 손 안에 폭 안기듯이 들어온다며 내 손을 꼭 잡고는 놓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는 결혼 준비를 하며 애틋한 사랑을 키워나갔다. 날씨는 여전히 쌀쌀한데 신랑은 편지에 출퇴근을 하면서 수줍게 핀 개나리꽃을 보노라면 내가 생각난다고 한다. 신랑이 있는 곳은 따뜻한 나라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봄꽃에 취해있는 신랑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얼마 후, 나는 익숙한 나의 모든 것들을 뒤로 한 채 신랑과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날씨차이만큼이나 생소한 주변의 환경 속에서 적응하지 못할까 걱정이 되었던지 신랑은 날이 밝기 전에 출근을 하고 일찍 퇴근하여 내 곁에 있어줬다.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 거추장스런 장갑도 끼지 않고 일을 하다 보니 신랑의 손은 성할 날이 없었다. 연료가 잔뜩 낀 손톱을 보고 놀랄까봐 나를 처음 보는 날도 손톱을 아주 짧게 깎았다며 환히 웃는다. 아들이 태어난 후에도 산후조리원에 있는 2주 동안 신랑은 어찌나 내 손을 놓지 않았던지 주변으로부터 손깍지 부부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나는 신랑의 거친 손을 꼭 잡으며 이 손만 놓지 않으면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아오기를 십여 년. 내 손은 더 이상 작지도 않고 부드럽지도 않다. 신랑의 손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살고 있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기 위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강하고 억척스레 탈바꿈했는가보다. 좋은 엄마도 되고 싶고 뒤처지는 사람도 되기 두려워 조바심을 내며 살아온 듯싶다. 삶에 대한 여유도 없고 타인의 나에 대한 평가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말이다. 안간힘을 쓰며 힘들 때마다 조금씩 더 성장하면서, 책임이라는 단어를 절실히 내면화하면서 손발을 더욱 부지런히 움직였다. 손아귀의 힘은 나날이 세졌으며 손바닥도 단단해졌다.

 

어느 날은 가만히 결혼반지를 꺼내 손가락에 끼워보았다. 당연히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몹시 소중한 그 무엇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온 식구들을 당황하게 크게 울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신랑이 선물을 사온 것이다. 신랑은 손바닥에 놓여있던 선물의 포장을 뜯었다. 예상대로 아름다운 반지였다. 신랑은 내 손을 잡고 여전히 예쁘다며 손등을 다독여준다. 나는 또다시 눈물이 났다. 손톱은 갈라지고 굳은 살이 밉게 박힌 신랑 손을 잡았다. 크고 묵직한 신랑의 손에서 한 가장의 책임의 무게가 느껴졌다. 내가 힘들 때마다 항상 내게 위안이 되어주었던 손이다. 이제는 내가 신랑 손을 잡아주어야겠다. 내가 진통을 겪을 때 거친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감싸주면서 내 불안을 없애주었듯이 이제는 나도 신랑에게 큰 위안과 힘이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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