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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작성일 2017-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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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정 대표 박 옥 순

 

또 다른 외딴집의 장닭이 소리쳐 새벽을 알린다. 꿈속에서처럼 아득하던 닭소리가 점 점 맑아지면서 크게 들린다. 마법에 걸린 듯이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고 먼 길을 떠날 사람처럼 바쁘게 새벽공기와 마주한다. 가시지 않은 어둠, 볼에 와 닿는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운 바람, 나를 태운 봉고차는 익숙한 듯 조금의 주저도 없이 안개 속에 묻힌다.

 

합천 실내 체육관 건너 주차장. 자동차에서 내리니 새벽안개가 나를 태고 속으로 몰고 간다. 신선이 된 것 같은 망상에 빠지면서 일백마흔다섯 징검다리를 건너노라면 웅장하지는 않지만 물 흐르는 소리가 이미 다른 모든 소리를 집어 삼키고 이세상의 소리는 물소리 하나가 된다.

 

안개에 쌓여 끝은 보이지 않지만 하나 둘 헤아려 나가는 돌다리는 똑 같은 크기, 자로 잰 듯한 간격, 모형의 틀로 찍어낸 모양새, 다섯 개 마다에 놓여진 배려, 인위적이어서 더욱 신뢰로 오는 안도감,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워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돌다리의 숫자를 헨다.

 

양쪽 강변쪽으로부터 다섯번째 돌다리에 유사시에 사람을 통제하리라 짐작되는 시설물이 있다. 강물이 불었을때를 대비한 안전장치 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돌다리 끝에 강둑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있다. 바람이 몰고 온 모래에 묻혀 있어 미끄러울 수 있는 곳이다. 발 끝에 힘을 모아본다.

 

강변 산책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니, 산으로 접어드는 오솔길에 이른다. 자연에 가장 가깝게 생긴대로 길이 나 있다. 이전에도 이 길은 있었겠지만 등산로라는 이름인 이상에는 안전을 위해 조금씩 작업을 한 흔적이 보인다. 늘어진 잔가지가 잘려 나갔을 것이고 산을 오르내리는데 최소한의 보폭 확보를 위해 윗둥치를 잘라낸 나무 등걸이 보인다. 앞만 보고 가픈 숨을 몰아쉬면서 쉬임없이 오른다.

 

초봄에 약간 두꺼운 등산복 속에서 흐르는 땀이 상쾌감을 준다. 중턱에 닿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스멀스멀 온몸으로 감탄이 소름이 되어 내 몸 밖으로 나온다. 안개 바다다. 안개 바다위의 외딴섬에 나홀로라는 의외의 만족감, 성취감, 고독감으로 같이 오른 친구의 존재 조차도 잊었다. 간간이 보이는 또 다른 섬들, 사방을 둘러보아도 안개뿐이다. 황강의 물줄기도, 합천읍내의 세상도 안개 속에 잠겨 나를 고독으로 몸부림치게 한다.

 

문득 소나무에 등을 대고 손을 뒤로 돌려 나무를 안는다. 등에 와 닿는 나무의 표피가 부드러운 것이 많은 이들이 나 같은 감성으로 소나무를 안았나 보다. 뭇사람의 손짓에, 손놀림에, 혹은 제 스스로 내어 주었을 몸짓에 너무나 부드러워진 나무껍질이 내 손에 닿는 순간, 익숙하다. 지우려 하면서도 잊지 않으려던 옛사랑의 고뇌 같은 아픈 달콤함이다. 이 순수함은 분명 나를 오만가지 상념에 젖어들게 할 것이고 벗어 던진 추억으로 몰고 갈 것 이라는 기대감에 짜릿해 온다. 곤혹스런 고독감을 만끽할 여유를 접어두고 가파른 곳에서 몇 개 인가의 나무계단을 밧줄에 의지해 오른다.

 

산 이쪽저쪽은 여전히 안개 바디지만 가까운 곳의 바위 틈새에 문득 뽀족히 내민 생명이 있어 눈길을 준다. 겹겹의 껍질 속에 연두색의 생명, 친구가 홀잎이란다. 친구는 그 신선함이 탐이나나보다. 나무계단을 보호하고 있는 밧줄을 열고 계단 밖 바위틈에 발을 내딛는다. 나의 걱정스런 눈짓에 나 이런 것 잘해 이 산 천지에 늘린 것이니까 한 개쯤은 나한테 내줘도 될거야.’ 라면서 뿌리째 뽑아 나에게 건넨다.

 

숲이 숨쉰다. 나를 반긴다. 나하고 얘기를 하잔다. 갈마라는 이름의 산. 그곳에는 내가 타임머신타고 세기를 거슬러 태고에 다다른 환상 속에 있게 하는 마술이 있는 것 같다. 영화의 배경 같은 신비로움이 있다. 안개로 인해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산, 또 다른날은 또 다른 풍경이 나를 기다리겠지만 조금씩 밝아오는 새벽이 나를 아침으로 떠민다. 정량늪쪽 산위에서 붉게 떠오르는 태양. 퍼지는 햇살을 받아 환하게 반짝거리는 새 생명들.

 

할 말이 많은 것 같은 모습으로 무거운 머리를 땅에 부딪고 있는 할미꽃, 정말 귀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꽃, 어제 보지 못한 모습이다. 할미꽃 둘레에 작은 돌멩이 몇 개를 놓아 꽃의 영역을 표시해 놓은 것이 보인다. 모르는 이의 작은 보살핌이 감동으로 와 닿는다.

 

어슬프지만 진보라색의 향을 내는 몇 포기, 몇 무더기의 제비꽃, 꽃잎이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들꽃 무리들, 진달래는 어제보다 더 수줍음이 몸에 뱄나보다. 가까이 하니 내 뿜는 색기에 현기증으로 쓰러질 것 같다. 진분홍색 진달래를 아름드리 꺽어 버들강아지가 차지하고 있는 조그만 항아리에 두고 싶다.

 

생각을 접고 다른 만족을 위해 산을 오른다. 정상에 올라 오늘 이곳을 오를 때 신비롭고 경의로운 자아를 끄집어 내게 해준 모든 생명들에게 감사의 환호를 한다.

 

운동으로 몸을 풀고 또 다른 등산로를 따라 산을 내려온다. 조금 가파르지만 더 인위적인 곳으로, 징검다리를 건너니 물소리뿐이었던 세상의 소리가 왁자한 소음으로 본래의 나를 주차장에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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