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1-10-26
김영준(대병면 거주 전직 교육자)
지난 달에 직장에서 퇴직을 하는 후배를 만났다. 도시를 떠나 촌으로 들어와 제2의 인생을 살겠다며 정착 후보지를 물색하고 있었다. 합천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당연히 합천에 들어와 살 것을 권유했다. 내가 이웃하면서 힘이 되어 주겠다는 둥, 해인사며 황매산 철쭉이며... 합천이 자랑하는 자연경관이며 문화재를 앞세워 합천이 얼마나 귀농귀촌하기 좋은지 열심히 설파했다.
그러자 후배 왈, “일해공원이 있다며? 일해라니... 그런 감수성을 가진 동네 근처에는 가고 싶지 않아요” 순간, 나는 입을 닫고 말았다. 내가 무슨 죄를 진 것도 아닌데 오욕에 가담한 공범자로서의 부끄러움을 온몸으로 느꼈다.
일해공원이 어떤 공원인가. 68억원이라는 예산을 투입하여 2004년 8월에 완공되어, 잠정적으로 ‘새천년 생명의 숲’이라는 이름으로 군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사랑받고 있었는데, 2007년 1월에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제대로 거지 않은 채 군에서 ‘일해공원’이라는 명칭을 확정하였다. 그 당시 도지사였고 지금 국회의원인 김태호도 공원명칭 변경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이후 공원 이름에 반발한 시민단체를 비롯한 군민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특히, 광주를 비롯하여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족 및 단체들이 전두환의 아호를 따 공원 이름을 명명하게 된 것에 대하여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고, 부끄러운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는 합천군민들의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비롯하여 우리나라에도 특정 장소나 거리에 인물의 이름을 붙여 명명한다. ‘이름’이 주는 스토리로 인해서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일해’라는 이름을 들으면 당신은 무엇이 연상되는가? 내가 광주 민주화운동의 당사자가 아니어도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고초를 겪지 않아도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전신에 소름이 돋고 피가 거꾸로 쏟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생명을 대하는 자세, 인간에 대한 예의, ‘생명 감수성’이다. 폭력과 불의에 대해서 분노하고, 정의와 인정에 공감하는 것이 ‘생명 감수성’이다. 21세기에 필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폭력, 조롱, 무시가 아니라 공감, 배려, 존중이다. 지금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을 비롯하여 생명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는 세태이다. 지구 안의 모든 생명체가 조화롭게 함께 살아가는 것이 미래지향적인 태도가 아닐까? 그런데 전두환이 집권하던 80년대도 아니고 2007년에 어떻게 일해라는 명칭을 버젓이 공원에 쓰고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는지, 무지하고 폭력적인 감수성에 놀랄 뿐이다.
공원 입구에 전두환의 친필 휘호가 새겨진 표지석이 서 있고, 뒷면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이 공원은 대한민국 제12대 전두환 대통령이 출생하신 자랑스러운 고장임을 후세에 영원히 기념하고자 대통령의 아호를 따서 일해공원으로 명명하여 이 표지석을 세웁니다’
누군가는 자랑스럽고 영원히 기념하고 싶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살을 파고드는 고통을 느낀다면 상처를 상기시키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2021년에 나는 표지석 앞에 서서 부끄러움을 넘어 공범으로서의 죄책감을 느낀다. 아마도 아직도 ‘일해공원’이라는 이름을 지우지 못하는 나에게 느끼는 무력감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권력을 위해 광주 시민들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삼청교육대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무참하게 짓밟아버린 독재자의 흔적을 우리 합천에서 지우는 것이 이렇게 어렵나? 언제까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나? 그러니 부끄러운 이름은 제발 좀 지우자고 호소한다.
‘새천년 생명의 숲’을 군민들의 품으로 오롯이 돌려주기를, 합천군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서를 이해한다면, 영호남 간 화합을 원한다면 일해공원 명칭을 반드시, 빨리, 철회해야 한다.
제2의 인생을 보낼 곳을 찾는 후배에게 술 한 잔 사주면서, 생명의 땅, 합천으로 귀촌하라고 호기롭게 권하고 싶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