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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작성일 201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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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군노인회 전 사무국장 이호석

 

연초, 조류독감(AI)으로 전국의 많은 닭이 살·처분되고 달걀값과 닭값이 제멋대로 올랐다. 집사람과 나는 집 뒤 텃밭 모퉁이에 닭장을 짓고 닭을 직접 길러 질 좋은유정란과 닭고기를 자급자족하자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닭장 짓는 일이 처음이라 주위 사람에게 물어물어 일주일 정도 씨름을 하며 두어 평 남짓한 닭장을 완성했다. 기둥과 골격은 모두 지름 50밀리 정도의 철 파이프를 사용하였고, 모양도 직사각형으로 반듯하게 지었다. 한 면은 집 뒤 도로변 옹벽을 이용하고 3면은 촘촘한 철망으로 둘러쳤다. 그리고 천정은 아크릴판을 덮어 투명하게 하였고 바닥에는 톱밥을 깔아 폭신폭신하게 하였다. 보는 사람마다 닭장치고는 호텔이라며 칭찬을 한다. 내가 봐도 호텔은 아니더라도 닭 모텔쯤은 돼 보였다.

 

닭장을 지어놓고 병아리가 시장에 나온다는 3월 초부터 5일마다 열리는 지역 재래시장에 몇 번을 나갔지만, 연초의 조류독감 여파인지 시장에 병아리가 도통 나오질 않더니, 4월 첫 장날에 어느 지인으로부터 병아리가 나왔다며 빨리 오라는 전화가 왔다. 승용차를 타고 불이 나게 갔더니 두어 달 키운 병아리라며 제법 큰 병아리를 팔고 있었다. 한 마리에 6천씩, 암놈 10마리와 수놈 1마리 모두 11마리를 샀다. 나는 닭 장사에게 수놈 한 마리로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닭 수놈은 정력이 좋아 암놈 서른 놈은 거뜬히 거느릴 수 있다.”라고 했어. 모두 웃었다.

 

생전 처음 내 손으로 기르는 닭이라 시간만 나면 닭장으로 나가 먹이와 물을 주며 정성을 쏟았다. 내가 닭장엘 자주 가니까 평소에는 나를 본 둥 만 둥 하던 호야(강아지 이름)가 시샘하는지 내가 있는 닭장 쪽을 바라보며 시끄럽게 짖어 댔다

 

짐승도 자기를 등한시하고 다른 놈을 좋아하면 시샘하는 모양이다. 닭을 기르면서 할 일이 더욱 많아졌다. 매일같이 개밥, 또 앞뒤 텃밭에서 제철을 많나 밤낮없이 자라는 잡초도 수시로 매야 했다.

 

병아리는 좋은 환경에서 잘 먹어 그런지 하루가 다르게 잘 자랐다. 병아리로 입양한 지 겨우 두 달이 지났는데 벌써 닭으로 개명을 해도 충분하다. 털도 기름기가 번지러 한 게 큰 닭이 다 되었다. 암탉보다는 수탉이 더 잘 컸다. 덩치도 크고 머리와 목덜미에 검붉은 벼슬이 큼직한 게 벌써 남자다운 위엄을 갖추었다. 그런데 며칠 후, 닭들을 유심히 보니 암놈이라는 열 놈 중에 또 한 놈의 수컷이 있었다. 어린 병아리 때는 감별이 쉽지 않다고 하니, 닭 장사가 나를 고의로 속인 건 아닌 것 같다. 어쨌거나 닭장 안의 가족은 수놈 두 마리에 암놈 아홉 마리로 재편성되었다.

 

5월 중순 어느 날 새벽이었다. 닭장 쪽에서 꺼어 꺽 꺼어 꺽하는 이상한 소리가 몇 차례 났다. 나는 족제비나 고양이가 . 닭장은 아무 이상이 없었다. 남자다운 위풍을 가진 수놈이 오늘 새벽, 첫울음을 울며 목을 틔우고 있는 것 같았다. ‘이놈이 이제 수놈 값을 하려나 보다싶었다. 그런데 암놈으로 분류되었다가 새로 나타난 수놈은 앞의 수놈보다 덩치도 좀 작을 뿐 아니라 아직 울지도 않고 남자다운 위엄도 덜했다. 그리고 큰 수놈 때문에 기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슬슬 피해 다녔다.

언제부터인가 성년이 다 된 닭들이 수시로 연애질을 하는지, 아니면 수놈이 성희롱(?)하는지 모르지만, 쫓고 쫓기며 끽끽 대는 소리가 나다가 조금 있으면 위엄을 갖춘 수놈의 호탕한 울음소리가 난다. 그 소리는 닭장 안을 완전히 장악한 가장으로서 우월감과 암놈을 탐한 행복감에서 나오는 큰 웃음소리 같기도 했다. 며칠 후부터 새로 등장한 수놈도 울기 시작했다. 앞의 수놈은 목소리가 크고 날카로운데, 새로 나타난 수놈은 기가 죽어 그런지 목소리도 작고 굵고 부드러웠다.

 

그런데 이 수탉들에게 금방 문제가 생겼다. 이른 새벽이면 두 놈이 번 채로 울어대면서 이웃의 새벽잠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예전 농촌처럼 시계도 없고 농사만 짓던 시절에는 새벽 수탉의 울음소리는 부지런한 농부들을 깨우는 자명종 역할을 하였고, 또 농촌의 낭만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 새벽부터 수시로 울어대는 수탉의 울음소리는 바로 이웃의 민원이 되기 때문이다. 이웃에 계속 피해를 줄 수가 없어 우선 두 마리 중 한 마리라도 삼계탕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어느 놈을 먼저 처리할 것인지 집사람과 의논을 했다. 인물도 좋고 남자다운 풍모를 가진 그놈을 키우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날카롭고 커서 이놈을 잡기로 했다.

 

드디어 삼 일 후를 D-데이로 정했다. 그런데 닭을 한 번도 잡아보지 않아서 잡을 일이 은근히 걱정되었다. 그날도 무척 더웠다. 오전 열 시경 그놈을 잡기 위해 닭장으로 들어갔다. 여름옷인 반소매로 닭을 잡으려고 하니, 아무래도 덩치 큰 그놈이 부레에 쫓을 것 같아 겁이 났다. 섣불리 달려들지도 못하고 꾀를 냈다. 가느다란 나일론 끈으로 올가미를 만들어 그놈이 가는 길목에 놓아 발을 낚아채려고 시도했다. 무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한 시간 가까이 따라 다녔지만, 그놈은 나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도저히 잡히질 않았다.

 

물 끓일 준비를 해 놓고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 소식이 없자, 집사람이 닭장으로 와 내 모습을 보더니 신문에 날 일이라며 박장대소를 한다. 그러고는 대칼구리를 가져와 금방 그놈을 눌러서 생포해 버렸다. 나는 그야말로 닭 쫓던 개처럼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이렇게 쉬운 것을 내가 한 시간 넘게 땀을 흘리며 닭 꽁무니를 따라다닌 걸 생각하니 스스로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사람이 닭의 목을 쥐고는 자기도 이상은 어쩔 수 없다면서 나에게 처리하라며 인계를 했다. 응급 결에 받아 쥐었지만, 또 닭목을 비틀거나 자를 자신이 없었다. 한 손에 닭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걸어 이웃에 사는 동생을 불렀다. 동생이 와서야 겨우 그날 닭잡기가 끝이 났다.

 

그런데 그날 수탉이 집사람에게 잡혀 나에게 인계될 때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사람에게 잡혀 최후의 발악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목이 잡히자마자 눈을 지그시 내리감고 가만히 있었다. 약육강식의 자연 섭리를 미리 알고 어차피 사람을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포악한 인간에게 사정하고 발버둥 처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체념을 한 것인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결국, 잘생긴 수탉은 우리 집에 온 지 겨우 넉 달, 아홉 마리의 암탉을 거느리고 한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며 호탕하게 잘 살았지만, 우렁찬 제 목소리 때문에 단명으로 짧은 생을 마쳤다. 수탉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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