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3-12-19
|
수수밭
김예슬
수수밭이라고 수수만 사나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쑥도 살고 내 팔뚝 따갑게 스치는 환삼덩굴도 살고 지구 저편까지 뿌리내린 쇠뜨기도 살지
수수밭이라고 수수만 자라나 온갖 들풀 씨앗이 내려앉아 수수보다 더 빨리 더 깊게 자라 버리는 걸
수수밭은 내 마음 같아 키우고 싶은 것만 키울 수 없는 마음 같아
ㅡ시집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상추쌈)
|
이웃 마을에 사는 청년 농부 김예슬(30세)씨가 펴낸 첫 시집 에 들어 있는 <수수밭>이란 시예요. 이 시를 동생인 청년 농부 수연이(26세)가 곡을 붙여 노래를 만들었어요. “봄날샘, 전북 진안 마령초등학교에 가서 누나랑 노래 공연을 했어요. 이 학교 어린이들이 ‘수수밭’이란 노래를 마치 교가처럼 자주 부른대요.” “수연아, 좋다야! 농부가 시를 쓰고 농부가 곡을 붙이고 농부가 노래를 부른다는 것도 자랑스러운데, 그 노래를 어린이들이 좋아한다니!” “봄날샘, 저도 좋아요.” “그래, 농부가 쓴 시가 국어교과서에 실리고, 그 시로 만든 노래를 음악시간에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야. 그래야 농부의 마음을 전할 수 있지. 그래야 함께 희망을 열 수 있지.” 수연이와 예슬이는 모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학교를 다니지 않았어요. 학교만 안 다녔을 뿐이지, 많은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여행을 다니고, 깔깔거리며 농사일을 하고, 신문사와 잡지에 글을 쓰고, 큰 상을 여러 차례 받기도 하고, 몇 해 전부터는 ‘서와콩’이란 이름으로 노래 공연도 다녀요. 수수밭에 수수만 자라는 게 아니라는 걸 널리 알리고 다녀요.
* 봄날샘 : 청년 농부들이 나를 부를 때 하는 말. |
글쓴이 서정홍 시인 (소개- 가난해도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참되게 바뀐다는 것을 가르쳐 준 스승을 만나,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러 시집과 산문집을 펴냈다. 전태일문학상, 우리나라좋은동시문학상, 서덕출문학상, 윤봉길농민상을 받았다.)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