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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6-05-03

요즘 합천군 곳곳을 다니다 보면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이 있다.도로변, 마을 입구, 심지어 지정 게시판이 아닌 곳까지, 각 단위 농협이 내건 현수막들이다.

농협의 자율성을 지켜야 한다비슷한 문구의 현수막이 마을마다 반복된다. 그 수와 위치만 보아도 이번 사안에 대한 농협의 위기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을 보며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이 현수막은 과연 누구의 의사인가.

조합원들의 충분한 논의와 의견 수렴을 거쳐 나온 결과인가, 아니면 조직 내부의 판단이 곧바로 외부의 입장으로 표출된 것인가.

협동조합에서 조직의 이름으로 대외적 입장을 밝히는 일은 곧 조합원 전체의 의사를 대표하는 행위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민주적 절차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율성을 주장하는 그 시작부터, 정작 내부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조합원과 국민의 약 95%가 농협 개혁 필요성에 찬성하고 있으며, 외부 감사위원회 설치에는 약 85~93%, 중앙회장 직선제에는 약 83~90%, 정부의 감독권 강화에도 약 67~85%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조합장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이들 사안에 대해 90% 이상이 반대하는 결과가 나왔다.

같은 조직을 두고 이처럼 극단적인 인식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다. 이는 조합원과 대표 사이에 구조적인 간극이 존재하며, 협동조합의 근간인 민주적 대표성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부 지역 농협에서는 경영 실패의 결과가 사업준비금 감소로 이어지고, 비용 절감이라는 이름으로 직원들에게 부담이 전가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실관계는 각 조직에서 확인되어야 하겠지만, 이러한 문제 제기가 반복된다는 것 자체가 현재의 구조를 돌아보게 만든다.

사업준비금은 당장 손에 쥐는 돈은 아니지만, 결국 조합원의 몫으로 돌아갈 공동 자산이다. 이것이 줄어든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게 조합원의 자산이 감소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손실은 공동체가 떠안고,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는 구조라면 이는 협동조합의 원칙과 맞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율성을 내세우는 것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자율성은 선언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민주적 통제와 책임이 작동할 때 비로소 정당성을 갖는다. 조합원의 충분한 정보 접근이 보장되지 않고, 의사결정 과정이 형식에 그치며, 책임이 위로 올라가지 않는 구조라면 그것은 자율성이 아니라 권한의 독점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전면적이고 지속적인 개입이 해법이 될 수는 없다. 협동조합이 관료적 통제 아래 놓이는 순간, 자율성은 형식만 남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찬반의 선택이 아니다. 자율성을 지키기 위한 방식으로서의 개입,즉 한시적이고 목적이 분명한 개입이다.

 

지금의 농협은 스스로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일정 기간 외부의 개입을 통해 재무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내부 통제 시스템을 정비하며, 조합원의 민주적 참여 구조를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만 그 개입은 분명한 원칙을 가져야 한다.기간은 제한되어야 하고, 목적은 재무와 민주성 회복에 한정되어야 하며,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반드시 종료되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진 개입이라면 그것은 자율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율성을 회복하기 위한 과정이 될 수 있다.

 

농협의 문제를 두고 흔히 자율성과 개입을 대립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그 이분법을 넘어서서, 자율성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자율성은 건강할 때 의미가 있다.그리고 그 건강은 저절로 회복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자율성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자율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회복의 과정이다.

 

 

 

- 함께하는 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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